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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tiny 1 개인 번역/유언, 가시 관련

고스트 파편: 유언 2

by 비명버섯 2020. 9. 23.

내가 후에 자렌 워드라고 알게 된, 나의 세 번째 아버지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였던 남자는 남쪽에서 나타나 팔라몬으로 흘러들어왔다.

 

당시의 난 그저 소년에 불과했지만, 아직도 그의 검은 형체가 텅 빈 길을 따라 느리게 마을 안으로 걸어들어오던 그 모습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는 그때까지 내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아마 마을 내 그 누구도 본 적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그저 지나가는 길일 뿐이라 말했고 당시에도 그랬거니와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지만, 삶이라는 건 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난 그때 그 장면을 하나하나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다. 그날의 분위기부터 모든 상황까지. 다만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사실 자렌의 허리춤에 달려 있던 그 쇳덩어리에 집중되어 있다. 그가 싸워 온 모든 전투의 상징이자 경고 그 자체인 듯 한 , 새것 같이 깨끗하면서도 길이 든 그 총. 그건 그의 허리에 달려 있었다.

 

그 남자는 위험하면서도 어딘지 모를 가벼움을, 그가 지니고 있는 순수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듯한 무게감을 띠고 있었다. 마치 그의 분노는 결코 이유 없이 남을 향하지 않으며 어떠한 원칙에 따라서만 주어진다는 듯이.

 

그가 마을을 향해 다가오는 걸 발견한 건 내가 처음이었지만 곧 팔라몬 전체가 나와 그를 맞이했다. 아버지는 모두가 숨죽이고 서 있는 가운데 나를 붙잡고 있었다.

 

자렌은 그의 윤이 나는 레이서 헬멧 너머로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의 모습은 마치 이야기 속 영웅과도 같았는데, 당시 마을 사람들과 그 모험가 사이의 침묵이 공포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아니면 경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는지 지금까지도 확신하지 못한다. 개인적으로 후자였으리라 생각하지만, 그 순간에 대해 내가 열거하는 사실들은 주관적인 감상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판관 로켄이 와서 공식적으로 그를 맞이하길 기다리는 동안, 내 인내심이 바닥났다. 난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고 광장을 가로질러서 이 새로운 호기심의 대상- 특별한 남자로부터 몇 걸음 떨어진 곳까지 달려갔다.

 

나는 그를 올려다봤고, 그는 고개를 숙여 나를 내려다봤다. 비록 그의 눈은 까맣게 코팅된 헬멧 너머에 숨겨져 있었지만 나를 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내 시선은 빠르게 그의 무기로 향했다. 거기에 매료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기가 가봤을 온갖 장소들을, 맛보았을 온갖 경의를, 그리고 견뎌냈을 모든 공포를 상상했고, 머릿속에서는 계속 한 영웅담에서 그다음으로 건너다녔다.

 

그 상상 속에 푹 빠져있었던 탓에, 난 그가 어느새 내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그 총을 마치 선물인 양 내밀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넋이 나간 채 그 총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차례 아버지를 향해 몸을 돌려 내가 알던 모든 이들을 마주 보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 표정들에는 걱정이-특히 아버지는 마치 내가 그 선물을 무시하길 바라는 것처럼 느리게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나는 훗날 여행자의 빛을 지켜내던 최고의 수호자 중 한명이자 이 태양계 내에서 가장 뛰어난 헌터였던, 자렌 워드라 알게 되는 남자를 향해 다시 돌아섰다.

 

그리고 그 무기를 조심스럽게 건네받았다.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펴보고, 상상하기 위해서. 그 무기의 무게와 그것이 지닌 진의를 느끼기 위해서.

 

그게 내가 처음으로 '유언'을 손에 쥔 순간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게 마지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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