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은 일곱 번째로 달이 하늘에 걸린 후 맞이하는 네 번째 밤이었다.
마지막으로 흔적을 발견한 날로부터 이미 아홉번의 일출이 지난 상황이었고, 기온이 그렇게 낮았던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적당했다고 하기에는 추운 그런 날씨였다.
자렌은 우리를 협곡에 머물게 했다.
절벽 끝을 따라 형성된 두터운 수목림이 찬 바람을 막아주었고, 흘러내리는 물줄기의 소음이 우리의 대화를 삼켜주었다.
우리는 소형선 두 척이 계곡을 가로지르며 낮게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몰락자들의 영토로 알려진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도 없는 그런 장소였다.
당시 우리는 여섯 명이었다.
다섯 번째로 달이 하늘에 걸렸던 때보단 세 명이 적었지만, 팔라몬의 잿더미를 뒤로하고 길을 나섰을 때보다는 여전히 한 명 많았다.
우리는 밤마다 돌아가면서 불침번을 섰다.
움직임은 최소한으로 유지했으며 대화조차 수신호와 간단한 제스쳐만으로 이루어졌다.
전투마다 우리는 의지를 다졌지만, 죽는 이들이 생길 때마다 문명으로부터 이토록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위험을 무릅쓸 이유에 대해 계속 반문했다.
소형선들은 크레슬러와 나다를,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나도 겁먹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본다면, 우리 모두가 포기하고 되돌아갈 온갖 이유를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것 같다.
단순히 돌아가고 싶어서라기보단 그것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 생각에 당시 모두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앞에 놓인 것은 미지의 영역이었다.
계속 전진한다는 건 곧 우리 또한 그 미지로 걸어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모든 것들이 마치 끝나지 않는 종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자렌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 한 번도.
적어도 우리 앞에서는 그랬다.
그런 그의 그 투지와 신념이 우리를 지탱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다시 떠올리기 괴롭지만-솔직히 말하건대 나의 불꽃을, 그 추운 밤 완전히 지쳐 꺼지고 말았던 그 불꽃을 다시금 살려낸 것은 다른 그 어떠한 것도 아닌 그의 죽음이었다.
그는 우리가 거의 다 왔다고 짐작하는 듯했다.
짐작이라기보단 좀 더.... 그래, 확신하고 있었다.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이끌었던 열정조차 브리빈, 트렌, 그리고 멜이 총에 맞아 쓰러졌을 때 완전히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그 고스트, 자렌의 고스트는 우리 중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은 채 항상 주변을 경계하고,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우리 자체가 아니라 매 순간을.
단 한 번도 그 고스트가 우리를 낮추어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다. 그 고스트는 그저 신중했고, 조심스럽게 굴었다.
몇 번 짧게나마 대화를 하는 것을 우연히 엿듣기도 했으니 말을 할 줄 아는 것은 분명했지만, 누구도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진 않았다.
때때로 그 고스트의 시선이 내게 머무는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나는 그게 나와 자렌간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내게 아버지와도 같았으니까. 당시의 난 왜 그가 유일하게 나만을 돌봐주고, 지켜주고자 했는지 알지 못했다. 그 모든 상실을 겪고 난 후의 난 그런 그의 행동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당시 그가 다른 이들과 얼마만큼 거리를 두고 지냈는지를 돌이켜 생각해본다면 알아차렸어야만 했다. 혹은 최소한 거기에 다른 무슨 이유가 더 있을 거라 짐작이라도 해야 했다.
우리는 그날, 지난밤보다는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다.
총성이 숲을 뚫고 울려 퍼졌고, 곧이어 몇 차례 더 이어졌다.
먼 곳에서부터 들린 소리였지만 잠잠하던 심장 소리를 키우기엔 충분한 거리였다.
귀에 익은 총성이었다. 바로 자렌의 주 무기이자 그의 가장 오랜 친구인, '유언' 특유의 소리.
곧바로 또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고요하고도 날카로운, 절대 놓칠 수 없는 그 메아리가 짙게 깔린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이어지는 지독한 침묵과 함께, 어둡고도 지옥같은 단 한발이.
우리는 낮게 웅크려 숨죽인 채,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자렌은 홀로 떠난 상태였다.
어쩌면 우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서로 지나치게 가까워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가 홀로 죽음을 마주하러 떠나기로 결심했을 정도로.
적어도 당시의 나는 결코 인정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게 우리를 지키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의 뒤를 쫓아 고통과 불길로 점철된 몇 년에 걸친 여행을 계속해오는 동안, 그는 그저 그가 우리를 부르던 호칭처럼 더는 '아이들'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메아리가 잦아들었지만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 그 방향을 알 방법도, 알고 급하게 달려간다 한들 소용이 없었기 때문에.
이미 일어난 일은 돌이킬 수 없는 법.
마침표를 찍듯 울려 퍼진 총성이 우리 중 그 누구도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 이름부터가 '유언'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이 세계 어딘가, 우리가 부재한 증인이 될 만큼 가까우면서도 꿈이라 치부할 수 있을 정도로 떨어진 어딘가에서 자렌이 죽은 채로 누워있거나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우리는 한동안 자리를 지켰지만 해가 떠오르면서부터 다른 이들은 제 갈 길을 찾아 흩어지기 시작했다. 자렌이 없어진 이상,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복수심마저 이제는 빛이 바랬고 다른 그 어떤 동기도 없어진 상태에서 삶을 갈구하는 공포와 열망이 의무와 욕구 사이에 마지막 쐐기를 박아넣고 말았다.
정오가 되었을 땐 나 혼자만이 남아있었다. 나는 결코... 아니, 절대로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자렌을 찾아 그에게 안식을 주거나 혹은 다른 쪽이 나를 발견해서... 내게 끝을 선사하거나 둘 중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죽음은 계속해서 나아갈 터였다.
하지만 그 순간, 무언가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긴장으로 인해 내 전신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고, 난 재빨리 총의 손잡이를 감아쥐었다.
그러자 이미 힘겹게 받아들였던 진실의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바로 자렌의 고스트가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선 채 나를 마주했다.
난 긴 숨을 내뱉으며 앞으로 허물어졌다. 여전히 서있긴 했지만 완전히 절망한 채로.
작은 빛은 마치 호기심 어린 것처럼 앞으로 기울어진 채 나를 살펴보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한차례 빛을 쏘아 내 전신을 훑어 스캔했다.
나는 그 빛나는 눈을 올려다보았고
고스트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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