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절— 괴물이 꿈을 꿀 때
난 아버지와 이야기하려 태양계의로 향했다. 길을 따라 계속 걸어가는 데 갑자기 이런, 그러니까, 어떤 소리가 들려 뒤를 돌아보니 두 여동생이 길을 찢어발기고 있었다. 둘이서 거대한 처형용 검을 들고는 길에 박힌 돌을 하나하나 파내면서. 각 돌에는 마치 석판처럼 글자들이 뺴곡히 적혀있었고 그 밑의 진흙에는 벌레가 들끓었다.
그 둘이 날 따라잡기 전에 태양계의로 가야 했기에 급히 뛰기 시작하자마자 누군가가 날 넘어뜨렸다. 아버지였다. 그는 다리를 내밀어 날 넘어트리고는 내 뿔을 잡고 얼굴부터 땅바닥에 처박았다. 너무 아파서 순간 내 벌레를 토해낼 것만 같았다.
"왜 대비하지 않았느냐." 아버지가 말했다. 그는 번개와 바다 생물의 발광으로부터 시야를 보호해 줄 반짝이는 글레어 고글을 쓰고 있었다. 아버지의 눈 세 개에 모두 반사된 내가 보였다. "자신들은 태양계의로 와 나와 대화할 수 없기에 너를 질투할 거란 생각은 안 했느냐? 아예 널 없애려 들 거라는 생각은??"
난 갓 태어난 지 이틀째였을 때처럼 울부짖으며 말했다. 아버지, 난 아버지를 제 친구라 여겼어요. 여기서라면 안전할 줄 알았다고요. 하지만 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주먹을 뻗었고, 난 그가 웃고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것도 내가 아버지를 믿었다는 사실을 비웃고 있다는 걸. 대체 왜 안전할 거라 생각했을까? 아버지의 주먹에는 검은 태양이 깃들어 있었고, 내 목을 움켜쥐어 든 채 그 검은 태양을 내 안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아버지의 고글에 비친 내 입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 개의 눈에 반사된 세 개의 입이, 수없이 많은 이빨을 품은 그 입이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래서 난 아버지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크게 한 입 베어 물고 그를 할퀴어 찢었다. 아버지의 다리를, 팔을, 그의 고글과 눈까지 집어삼키자 그가 말했다. 잘했다, 아주 잘했어.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장엄한 행위이니라.
하지만 내 동생들이 여전히 길을 찢어놓고 있어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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